쿠마모토 스토리/쿠마모토 스토리

쿠마모토는 왜 '불의 나라'라고 불릴까?

kumamon.kr 2023. 8. 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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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모토의 대표 축제인 '히노쿠니 마츠리'

쿠마모토의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히고’란 단어가 쿠마모토와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껏 그 유래를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히고’에 대해 자세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고대사는 문헌자료가 적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신화의 영역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일본 신화에는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온갖 개념이 뒤섞여 있다. 게다가 내가 다루는 쿠마모토 지역은 일본 전체로 보면 변방이기 때문에 참고할 자료도 많지 않았다.

그래도 가능한 한 최대로 자료를 취합해 히고의 유래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보는 글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고대 히고 호족세력의 위치(맨 위부터 아소 국조, 히노키미, 아마쿠사 국조, 아시키타 국조)

‘히고’란 무엇인가

우선 ‘히고’란 무엇인가. 정확히 말하면 히고 국(肥後国)이다. 고대 시대 일본은 각 지방을 ‘국’으로 나눴는데 일본어로는 ‘쿠니’다. 7세기에 율령제가 확립되기 전 각 국을 통치하는 이는 국조(国造, 쿠니노미야쯔코)였다. 고대 일본은 중앙집권체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지방 호족이 국조 자리를 세습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고대사 문헌에 따르면 이런저런 천황들이 지방 호족을 ‘국조’로 임명하는 대목이 있다. 다만 국조를 임명하는 천황들은 대개 15대 오진 천황(応神天皇) 이전의 인물들이다. 일반적으로는 오진 천황 이전의 천황들은 역사 인물이기 보다는 신화 속 인물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즉, 히고 국은 현대의 쿠마모토 현에 해당하는 고대 일본의 한 지방이다. 일본의 고대 문헌에 따르면 히고 국에는 4명의 국조(히 국조(=히노키미), 아소 국조, 아시키타 국조, 아마쿠사 국조)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율령제 이전 히고국은 ‘히국’(火国, 히노쿠니, 불의 나라)의 일부였다. 율령제가 실시된 이후 여러 쿠니들은 천황과의 거리에 따라 전후(前後)의 2국으로 분리되는 경우가 많다. 히국의 경우 율령제 이후 히젠(肥前)과 히고(肥後)로 분리됐다.

여기서 히젠 국은 지금의 나가사키 현(長崎県)과 사가현(佐賀県)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히고 국은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의 쿠마모토 현이다. 특이한 점은 전후로 나뉜 다른 쿠니와 달리 히젠과 히고는 육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히젠과 히고 사이에는 아리아케 해(有明海)가 있다. 비록 육지로 이어져 있지는 않지만 히젠과 히고는 한 덩어리로 묶일 정도로 고대 시대부터 연관성이 있는 지역이었던 것 같다.

신비로운 자연 현상 '시라누이'(不知火)

쿠마모토가 ‘불의 나라’가 된 이유

쿠마모토는 왜 ‘히국’, 즉 불의 나라로 불리게 된 것일까? 여러 일본어 자료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아리아케 해에서 볼 수 있는 시라누이(不知火)라는 자연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다. 12대 케이코 천황(景行天皇)의 큐슈 원정 때, 시라누이를 따라서 무사히 야쯔시로의 토요노무라(豊村)에 도착한 데에서 ‘히국’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문헌에 나온 내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시라누이란 무엇인가. 시라누이는 ‘알수 없는 불빛’이란 뜻으로, 음력 7월경의 밤에 아리아케 해 일대에서 관측되는 자연 현상이다. 밤이 되면 바다 먼 곳에서부터 부모불(親火, 오야비)라 불리는 불빛이 하나둘 씩 나타난다. 이것이 좌우로 나뉘며 일렬로 늘어서는데 사진에 나온 것처럼 수많은 불빛이 해수면 뒤에 서있는 듯한 현상이 된다. 새벽 3시 전후가 시라누이가 가장 잘 관찰되는 시간대다.

고대 일본에서는 시라누이를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생각해 요괴 등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시라누이의 과학적인 원인이 분석됐다. 지금은 시라누이가 신기루와 같은 원리로 생생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만 야쯔시로 해안의 간척 등으로 인해 현대는 과거보다는 보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야쯔시로 시의 설명에 따르면, 우키 시(宇城市)의 에이노오쯔루기(永尾剱) 신사에서 시라누이를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2015년 9월 아소산의 나카다케(中岳)에서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

두번째 설은 화산과의 연관설이다. 히고에는 아소산(阿蘇山), 히젠에는 운젠다케 산(雲仙岳)이라는 거대한 화산이 존재한다. 특히 아소산 일대는 지금도 화산 활동이 이어져오는 곳이기도 하며, 고대 시대부터 아소 국조가 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하다.

《히젠국 풍토기》에는 10대 스진 천황이 토착 세력인 츠찌구모(土蜘蛛)를 토벌할 때에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도움을 준 이야기가 있다. 이후 스진 천황은 토벌장군을 히노키미(火君, 화군)로 임명하고, 그의 세력권을 히국으로 이름붙였다고 한다. 아마도 히국이 야마토 정권의 세력권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소산의 화산 활동이 야마토 정권에 도움을 준 것일 수도 있다.

 

사진 출처

 

* 히노쿠니 축제
* 지도 제작 홈페이지
* 시라누이 사진
아소산 나카다케 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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