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모토의 역사 1 - 들어가는 말
누군가 필자에게 일본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쿠마모토현(熊本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쿠마모토현은 동쪽으로 아소산(阿蘇山)이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는 아리아케 해(有明海)가 있다. 산을 가고 싶으면 동쪽으로 가면 되고, 바다를 가고 싶으면 서쪽으로 가면 된다. 아소산은 화산으로 겨울에는 나카다케(中岳) 등 분화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 또한 아소산 전역에는 한우와 비슷한 품종인 적우(赤牛, 아카우시)를 키우는 목장이 펼쳐져 있으며, 쿠마모토시 시내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마음껏 소고기를 즐길 수도 있다.
서쪽으로 가면 아마쿠사(天草) 제도가 있는데 아마쿠사의 북쪽 해안에서 조금만 배를 타고 나가면 동물원이 아니라 자연에서 펼쳐지는 돌고래 쇼를 감상할 수 있다. 아마쿠사의 남서쪽에는 에도 시대 기독교인의 마을인 사키쯔 집락(崎津集落)을 방문할 수 있다. 수백년간 막부의 감시를 피해 절로 위장한 교회에서 신앙을 지켜온 그들의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아닌 입장에서도 감동적이었다.
도시 생활에 물들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쿠마모토시는 살기 좋은 곳이다. 쿠마모토현의 중심부에 있는 쿠마모토시는 74만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로, 한국의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대부분의 시설은 쿠마모토시에서도 즐길 수 있다. 백화점도 있고, 오락실도 있고, 각종 맛있는 식당도 많다. 필자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한국에서 자취를 감춘 노면전차도 탈 수 있다.
쿠마모토에서 1년 이상을 지내면서 쿠마모토란 지방에 대해 더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예전부터 역사 탐구를 좋아했기에, 가장 먼저 쿠마모토의 역사를 찾아봤다. 현지에 사는 지인을 통해 초등학교 용 쿠마모토 역사책도 봤고, 완독하진 못했지만 좀더 두꺼운 분량의 책들도 보게 됐다.
쿠마모토현에서 스스로 펴낸 <쿠마모토의 역사>란 책도 있었고, 생각보다 자료의 양은 풍부했다. 문제는 한국어로 된 자료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귀국한 이후 한국어로 된 쿠마모토 역사 관련한 자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필자가 읽었던 책들을 번역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다만 저작권이 문제였다. 일본의 저작권자 측에 문의를 해도 답변을 듣지 못하거나, 답변이 오더라도 ‘상업적 이용 여부와 무관하게 저작권을 내셔야 한다’는 답변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개 일반인인 필자가 네이버 블로그에 쿠마모토 역사와 관련한 책을 번역해서 올린다 해도, 일본의 저작권자가 그 사실을 알고 법적인 시비를 걸어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생각도 솔직히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자가 뻔히 있는데도 번역문을 올리는 것은 찝찝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작권 문제가 없는 위키백과의 글을 번역해서 올려보기로 했다. ‘쿠마모토현의 역사’를 시작으로 관련된 문서들을 연재 형식으로 올릴 예정이다. 위키백과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 CCL)를 준수하는 조건 하에서 그 내용을 어떠한 용도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즉, 필자가 위키백과의 내용을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려도 되고, 그 내용으로 출판을 해도 되고, 기타 등등 뭘 해도 좋다는 것이다. 다만 배포할 때는 필자도 CCL 저작권으로 배포해서 다른 이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야한다.
일본어 공부도 할 겸 틈틈히 해당 문서를 번역해 봤다. 물론 필자가 전문 번역인이 아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시간은 오래 걸렸다. 인명이나 전문용어를 어떻게 번역하는게 적절한지 헷갈려서 몇 줄을 번역하는데 한참을 허비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1차적으로 번역을 끝냈기에, 블로그에 순차적으로 공유하고자 한다.
단 한명이라도 이 번역 연재를 보고 쿠마모토현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표기법 관련>
우선 이 글은 정식 출판물이 아니기 때문에 국립국어원의 ‘일본어 표기법’을 완전히 따르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국립국어원 표기법에서는 어두와 어중・어말 표기를 다르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필자는 한글과 카나를 가능하면 1:1 대응시키는 방식으로 표기했다. つ의 경우 표기법에서는 ‘쓰’로 표기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쓰’보다는 ‘쯔’나 '츠'가 맞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적었다.
다만 촉음(促音) ッ를 ㅅ받침으로 적는다거나, 장모음은 표기하지 않는 등 표기법의 다른 요소들은 대부분 채용했다. 지명의 경우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 제4장 제3절에 따라 지명이 하나의 한자인 경우에는 강, 산 등을 겹쳐 적었고, 그 외에는 겹쳐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쿠마모토의 중심을 흐르는 白川의 경우 ‘시라카와강’으로, 쿠마모토 남부를 흐르는 球磨川는 ‘쿠마강’으로 적었다. 다른 일한 번역 사례를 보면 천(川)도 강(江)으로 번역하는 사례가 많아, 대부분의 경우 ‘강’으로 표기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관직명 등 용어 번역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고한 원칙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번역자마다 각기 다른 기준을 갖고 있는 듯 하다. 필자의 경우 한국어에서도 쓰이는 한자어이거나, 한국어에는 없는 한자어지만 한자를 통해 그 의미를 어느정도 알 수 있는 경우에는 한국어 발음으로 적었다. 다만 한국어에서도 용례가 없고,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냥 일본어 발음으로 적고 옆에 한자를 같이 적었다.
예 : 天領 -> 천령, 勤皇党 -> 근황당, 庄屋 -> 쇼야
학술적인 목적의 글도 아니고, 필자가 언어학에 대해서는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왜 이렇게 표기를 했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능력은 없다. 또한 이 설명에 나온 것들을 수미일관하게 적용하진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고쳐 나가도록 하겠다.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