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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모토 스토리/쿠마모토의 역사

쿠마모토현의 역사 17 - 히토요시, 야츠시로, 아마쿠사의 동향

by kumamon.kr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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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요시 시 후모토 정(麓町)에 있는 사가라 호국신사(2012년)

히토요시와 야츠시로


남북조 시대에 쿠마 지방의 사가라씨는 타라기의 카미사가라 씨와 히토요시의 시모사가라 씨로 나뉘어 아소 씨처럼 서로 대립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교착상태를 매듭짓고 가문을 통일시킨 사람은 분안(文安) 5년(1448년) 카미사가라를 멸망시킨 사가라 나가츠구(相良長続)였다. 하지만 이 일은 본가에 대한 분가의 하극상으로 간주된다.

나가츠구는 슈고인 키쿠치 타메쿠니(菊池為邦)로부터 아시키타 군의 영유권을 획득했고, 칸쇼(寛正) 4년(1463년)에는 나와 아키타다(名和顕忠)를 도와준 대가로 타카다 향(현재의 야츠시로시 남부)도 영지로 편입시켰다.

사가라 씨의 원조를 받아 야츠시로 성으로 돌아온 나와 아키타다는 타카다 향을 아쉬워했다. 분에이 8년(1476년) 사츠마의 우시쿠소인(牛屎院)으로 사가라 씨가 출병하자, 아키타다는 그 틈을 파고들어 타카다 향에 쳐들어갔다. 나가츠구의 적자인 사가라 타메츠구(相良為続)는 아마쿠사의 영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이 공격을 막았다.

분에이 14년(1482년) 아키타다가 또다시 쳐들어오자 다시 한번 아마쿠사 세력과 힘을 합친 타메츠구는 이를 물리쳤다. 타메츠구는 그대로 야츠시로를 공격해, 2년 후에는 제압에 성공했다. 그는 기세를 몰아서 토요후쿠(豊福, 현 우토시, 구 마츠바세 정)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메이오 8년(1499년)에는 키쿠치 요시카즈(菊池能運)의 도움을 얻은 나와씨에게 패하여, 마츠바세와 야츠시로를 포기하고 쿠마 지방으로 돌아왔다.

아마쿠사 시 아마쿠사 정에 위치한 묘켄우라(妙見浦, 2010년)

 

섬 지역에 기반한 무사단


아마쿠사 지방의 무사단은 거의 모든 섬에 존재했다. 카마쿠라 시대 전기에 알려진 무사단으로는, 아마쿠사 시모시마섬 서북부의 키쿠치씨 계열로 알려진 지두직의 시키 씨(志岐氏), 시모시마섬의 중남부 혼도지마의 오쿠라 씨(大蔵氏) 계열로 알려진 아마쿠사 씨(天草氏), <몽고습래회사>에 그 활약이 기록된 오야노섬(大矢野島)의 오야노 씨가 있었다.

시키 씨가 지두직을 얻은 것은 겐큐(元久) 2년(1205년)부터로 알려져 있다. 시키 씨는 이 지역에서 신흥 세력이었기 때문에 호죠 씨나 탄다이인 잇시키 씨와 관계를 맺는 등 그때 그때 권력자와의 연줄을 얻어 세력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아마쿠사 씨는 죠헤이・텐교의 난(承平天慶の乱)에서 활약한 오쿠라노 하루자네(大蔵春実)의 후예로 여겨진다. 죠에이(貞永) 2년(1233년) 하라다 타네나오(原田種直)의 여식 하리마노츠보네(播磨局)가 혼도지마의 지두직을 계승한 것에서 시작한다. 오쿠라 씨 계열로 알려진 오야노 씨는 원나라 침략기에서의 기록 이후 그 활동이 불분명하다.

무로마치 시대 중기에는 아마쿠사 지방을 무대로 한 소란이 일어난다. 나와 아키타다를 사이에 두고 전개된 키쿠치 씨와 사가라 씨의 싸움은 아마쿠사의 여러 무사를 끌어들였다. 키쿠치 측에서 활약했던 아마쿠사 카미시마섬(天草上島)의 스모토 씨(栖本氏)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이 무렵에는 아마쿠사 씨의 세력이 강해져 시키 씨와 코츠우라 씨(上津浦氏)를 압박했다. 이는 슈고인 키쿠치 요시카즈의 중재로 일단 진정됐으나, 훗날 전국 시대에 들어서서 다시 한 번 전란이 일어나게 된다.


사진출처

* 호국신사

* 묘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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