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 쿠마모토 번과 테나가 제도
쿠마모토 번은 칸에이 12년(1635년), 영내 전역에 ‘테나가’(手永)라는 지방 행정구역을 설정하고, 각 테나가를 관할하는 총쇼야(惣庄屋)[1]를 두었다. 이 테나가란 군과 촌의 중간에 해당하는 구분으로, 호소카와 씨가 부젠코쿠라 번(豊前小倉藩[2]) 시대부터 시행해 온 제도를 적용한 것이다. 총쇼야에는 대부분 대쇼야(大庄屋)나 옛 키쿠치, 아소 씨의 가신 등이 임명됐고, 각각의 테나가에는 회소(会所)[3]라 불리는 관공서가 설치됐다. 거기서 총쇼야는 연공의 청부나 민정의 운영을 맡았다.
당초 테나가는 영내에 100개소 이상 설치됐으나, 통폐합을 거듭해 죠오(承応) 2년(1653년)에는 59개, 그리고 나중에는 51개까지 줄어들었다. 에도 시대 중기에 이르러 테나가는 지방행정의 기본 단위로의 성격이 강해졌다. 군 단위에 있던 대관(代官)을 테나가 단위에 두었고, 이후 대관을 총쇼야의 겸직으로 하는 등의 개정이 이뤄졌다. 또한, 세습제였던 총쇼야는 곧 임명제가 됐고, 전근 등이 실시되면서 관료로서의 성질을 띠게 됐다.
각 지역의 발전 - 쿠마모토성 일대
쿠마모토성의 성하마을(城下町; 죠카마치)은 키요마사 시대에 기본 구성이 완성됐다. 축성에 앞서 시라카와 강과 합류하던 이세리 강(井芹川)을 분리해 아리아케 해(有明海)로 흘러가도록 바꿨다. 또한, 츠보이 강도 시라카와 강에서 이세리 강으로 흘러들어가도록 하여, 각각이 쿠마모토 성의 해자로서 기능하도록 했다.
성의 주변엔 무가의 저택을 두었는데, 토목공사를 위해 후루마치・신마치(古町・新町)와 츠보이(坪井), 그리고 쿄마치(京町)의 일부에 정인(町人, 쵸닌)의 거리가 형성됐다. 쵸로쿠 교(長六橋)는 이 무렵에 세워진 성하마을의 다리 중 유일하게 시라카와 강에 놓인 다리였다.
호소카와 씨가 입국한 뒤에도 마을은 발전과 정비를 이어갔다. 칸에이 13년(1634년)에는 호소카와 타다토시에 의해 스이젠 사(水前寺; 스이젠지)가 건립됐으며, 이는 키야마(木山[4]) 방향 가도변에 위치한 찻집으로 발전했다.
3대 번주 호소카와 츠나토시(細川綱利)의 시대에는 스이젠 사 안에 모모야마 문화(桃山文化) 풍의 회유식(回遊式[5]) 정원인 죠주엔(成趣園 : 스이젠지 죠주엔)이 완성됐다. 쿄와(享和) 3년(1803년)에는 죠주엔 옆에 번이 운영하는 밀랍 제조소가 건설됐는데, 이 밀랍은 카세 강(加勢川)에서 에즈 호(江津湖)를 거쳐 카와시리(河尻)까지 수로로 운반됐다.
중세의 아소
중세의 아소는 진키(神亀) 3년(726년)부터 이어져 내려온다고 하는 사이간덴 사(西巌殿寺)를 중심으로 승려와 야마부시(山伏[6])가 수행하던 땅이었다. 하지만 이 절은 전국시대에 쇠퇴해 히데요시의 큐슈 통일 때에 싸그리 불태워졌다. 사이간덴 사는 키요마사의 시대에 쿠로카와 촌(현재 아소시 쿠로카와)에 재흥됐다.
에도 시대의 아소에서는 오미네 수행(大峰[7]修行)이 이뤄지는 한편, ‘아소 강의’(阿蘇講)라 불리는 관광 안내도 실시됐다. 호레키(宝暦) 연간(1751~1763년) 경부터는 온천지로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분카(文化)・분세이(文政) 시대(1804~1829년)에는 츠에타테 온천(杖立温泉)에 ‘유테이’(湯亭)라는 온천업자가 생겨났고, 양조장(造り酒屋; 츠쿠리자카야) 등도 들어섰다.
야마가 온천의 발달
호겐(保元) 2년(1157년)에 우노 치카하루(宇野親春)가 발견했다는 전설이 있는 야마가 온천(山鹿温泉)은 이미 헤이안 시대의 사전 <화명류취초>에 야마가 군 온천 향으로 기재돼 있었다. ‘히고국인의 봉기’의 무대이기도 했던 야마가는 에도 시대에 부젠 가도의 역참 마을(宿場町)이자 온천 마을로서 발달했다. 호소카와 타다토시는 칸에이 17년(1640년)에 야마가 찻집을 세워, 여기에 오이케 요시타츠(尾池義辰)과 미야모토 무사시를 초대했다.
유서 깊은 이 지역의 민예품인 야마가 등롱은 화지(和紙)를 생산하기 좋은 땅이었던 당시의 야마가를 배경으로 발달했으며, 칸에이 9년(1632년)에는 쇼군에게 헌상되기도 했다. 또한 야마가 등롱 축제도 에도시대에 성행했다고 한다.
사진출처
* 스이젠지 죠쥬엔 - 위키미디어
* 야마가 등롱축제 - 위키미디어
주석
* [1] 庄屋(莊屋, 장옥; 쇼야) : 에도 시대에 마을의 정사를 맡아보던 사람으로, 지금의 촌장에 해당함
* [2] 현재 후쿠오카 현 키타큐슈 시(北九州市) 코쿠라키타 구(小倉北区) 일대에 있었던 번
* [3] 会所(회소; 카이쇼) : 에도 시대, 동네의 공무 담당자의 집회소, 관공서
* [4] 木山町 : 과거 카미마시키 군(上益城郡)에 있었던 정으로, 스이젠 사의 동쪽에 있는 지역이다.
* [5] 경내를 돌아다니면서 즐기는 형식의 정원
* [6] 山伏(산복; 야마부시) : 산이나 들에 살며 수행하는 승려. 또는 수험도(修験道)를 수행하는 자
* [7] 大峰山(대봉산; 오미네산) : 나라현 남부에 있는 산으로 이 일대는 옛적부터 수험도의 야마부시들이 수행하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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