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모토 현의 홍보 마스코트 캐릭터 '쿠마몽'의 인기가 자리잡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금은 국민적인 인기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쿠마몽이 되었다. 나의 근무처인 쿠마모토 대학을 감독하는 문부과학성의 청사 내에서 에이세이 문고(永青文庫) 연구센터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한 판넬 전시와 강연회를 개최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 쿠마몽이 응원하러 달려와 주어, 함께 “쿠마모토성의 복구를 모두 함께 지원해 달라”고 호소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대미문의 불상사로 흔들리고 있는 문부과학성이지만, 그때는 쿠마몽을 보고싶은 마음에 많은 직원들이 강연회장에 모여들었다. 쿠마몽의 그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 넘치는 대응은, 철저하게 프로 의식으로 일관된 것이었다. 쿠마몽의 이러한 일 능력에는 정말로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그런데, 지금은 '지역 캐릭터의 신'으로서 부동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쿠마몽이지만, 실은 처음 등장했을 당시 평판은 결코 좋지만은 않았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그런 악담들을 듣고 이렇게 말하며 주위에 강인하게 동의를 구하곤 했었다. "쿠마모토의 캐릭터가 곰이라니, 이거 완전히 곤란한걸. 쿠마모토에 곰은 없으니까. 보통 그렇게들 (곰이 있을 거라고) 오해하곤 하지. 쿠마모토의 산에는 곰이 잔뜩 있다는 둥. 쿠마모토는 홋카이도가 아닌데!"
미안했어, 쿠마몽.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쿠마모토에 곰은 없다'는 것에 관해서인데, 모두 알고 있듯이 예전에는 큐슈의 산지 일대에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었다. 큐슈의 곰은 도대체 언제 멸종한 것일까. 원래 근대화 이전인 에도 시대에는, 곰이 얼마나 있었으며, 촌(村)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늘 그렇듯이, 동료인 고토 노리코 씨(後藤典子)가, 에이세이 문고(永青文庫)의 고문서 속에서 흥미로운 기술을 발견해 주었다.
쿠마모토 번의 관청(奉行所) 일지인 《부교쇼 일기(奉行所日帳)》의 칸에이(寛永) 13년(1636) 9월 1일 항목에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아소 난고(阿蘇南郷) 지역에 나가노하루(永野原)라는 마을(村)가 있는데, 그곳의 신베에(新兵衛)라는 자가 지난 달 26일에 곰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신베에는 노획물인 털가죽과 위(胃), 기름을 아소 난고 지역 담당 관리(奉行)인 나스미(魚住)와 하라다(原田)에게 가지고 갔다. 그것을 쿠마모토로 보낸 것이 오늘 도착했다.
나가노하루(永野原)는 현재 쿠마모토 현 아소 군 타카모리 정(熊本県阿蘇郡高森町)에 속해 있는데, 미야자키 현 타카치호 정(宮崎県高千穂町)과 인접한 현의 경계 지역으로, 큐슈에서 마지막으로 곰이 서식하고 있었다고 알려진 소보 산(祖母山)의 서쪽 기슭에 해당하는 산간부 촌락이다. 신베에는 이 마을의 사냥꾼이었을 것이다. 음력 8월 말은 지금의 10월 중순에 해당한다. 에도 시대 초기, 소보 산 일대에서는 주변 마을 사냥꾼들의 총에 의한 곰 사냥이 행해지고 있었으며,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에 영양을 잔뜩 축적한 곰이 노획물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이 시대에도 곰을 사냥하는 일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냥꾼 신베에가 노획물의 털가죽과 위, 기름을 호소카와 가문(細川家)에 상납했다는 것이, 곰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털가죽의 용도는 상상이 되지만, 위와 기름은 어디에 쓰였을까. 알아보니, '곰의 위(胃)'란 곰의 쓸개(胆嚢)를 말하는 것이었다. 건조시키면 위장약으로 발군의 효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현재도 '곰의 간장(胆)'의 성분을 포함하는 한방약이 상품으로 존재한다. '곰 기름(熊の油)'은 피하지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상처나 화상을 비롯한 피부 트러블 일반에 효과가 있는 바르는 약으로서 현재도 귀중하게 여겨진다.
사냥꾼 신베에는 이것들을 아소 군의 관리(郡奉行)에게 상납했고, 관리는 그것을 쿠마모토로 보냈다. 기뻐한 것은 당시의 쿠마모토 번주 호소카와 타다토시(細川忠利)였을 것이다. 필자의 졸저 《호소카와 타다토시 - 포스트 센고쿠 세대의 일국 만들기》(細川忠利 ポスト戦国世代の国づくり) 에도 썼지만, 이로부터 4년 전에 코쿠라(小倉)에서 쿠마모토로 옮겨 온 때부터 타다토시는 소화기 계통의 병을 앓기 시작했다. 코쿠라 시절에 그가 관리(奉行) 앞으로 쓴 편지에는 "약으로 쓰고자 하니, 살아있는 늑대 암수의 대가리를 베어, 검게 찜구이를 해서 에도로 보내주오"라고 하는 등, 무서운 명령이 적혀 있는 것마저 있다.
타다토시로 말할 것 같으면 이른바 '건강 오타쿠'였다. 몸보신을 위해 온갖 민간약을 수중에 모았다고 한다. '절대 일찍 죽을 수 없다'. 이것이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의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천하태평'의 질서를 확립시키고자 했던 타다토시 자신의 사명감에 기반한 태도였다.
단, 곰의 위와 기름이 전부 타다토시에게 상납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것을 원한 사람들은, 무사들, 그리고 상인(町人)이나 부유한 백성 중에도 있었을 것이다. 원래부터 사냥꾼의 생업은 노획물을 상품화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것이니까. 이리하여, 상품 교환 관계가 인간의 욕망에 의해 가속화,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 에도시대의 큐슈, 쿠마모토에서 전개되어, 곰이나 늑대가 멸종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렇게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그래, 쿠마몽. 몇 년인가 후에, '큐슈에 있어서의 인간과 자연의 관계사'라던가 그런 심포지엄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에이세이 문고(永青文庫)의 풍부한 역사 자료를 해독해서, 확실한 사실에 기반한 모임을 만들고 싶다. 지역사회학이나 이과 계통의 선생님들과도 함께할 수 있다면 보다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그 때 또 응원하러 와, 쿠마몽. 바쁘겠지만 '쿠마모토의 곰 이야기'니까 꼭 와야 해!
원저자 : 이나바 츠구하루(稲葉継陽)
원문 출처 : 이나바 츠구하루, '쿠마모토의 곰 이야기'(熊本の熊の話), 《역사에서 현재를 읽다 - 쿠마모토・에이세이 문고로부터의 발신》(歴史にいまを読む - 熊本・永青文庫からの発信), 쿠마니치 신서(熊日新書), 2020
<이나바 츠구하루 소개>
* 1967년 토치기 현(栃木県) 출생. 1996년 릿쿄 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 퇴학. 문학박사.
* 2000년, 쿠마모토대학 문학부 조교수. 2009년부터 쿠마모토대학 에이세이 문고 연구센터 교수.
* 2016년 4월부터 쿠마모토재해 피해사료 레스큐 네트워크(熊本被災史料レスキューネットワーク) 대표
* 저서에 《전국시대의 장원제와 촌락》(戦国時代の荘園制と村落, 校倉書房, 1998년), 《일본 근세사회 형성사론 - 센고쿠 시대론의 사정》(日本近世社会形成史論 戦国時代論の射程, 校倉書房, 2009년), 《호소카와 타다토시 - 포스트 센고쿠 시대의 일국 만들기》(細川忠利 ポスト戦国世代の国づくり, 요시카와 홍문관(吉川弘文館), 2018년) 등이 있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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