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일본 적십자사 사장이자 국제적십자사·적신월사연맹(IFRC) 총재를 지낸 코노에 타다테루 씨(近衞忠煇)의 <코노에 타다테루 - 사람의 도리로 살다>가 출간되었다(중앙공론신사, 인터뷰 및 구성 오키무라 타케시(沖村豪)).
5월 8일은 국제적십자위원회 창시자인 앙리 뒤낭(Henry Dunant)의 생일이자 '세계 적십자의 날'이다. 일본 적십자사의 전신은 메이지 10년인 1877년 5월 1일, 세이난 전쟁(西南戦争) 때 설립된 터라, 일본의 적십자 운동에서 5월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코노에 씨의 저작이 이 시기에 출간된 것도 그러한 배경이 있을 것이다.
저자인 코노에 씨는 그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 다섯 섭관 가문(五摂家; 고셋케, 가마쿠라 시대(1185~1333) 이후, 후지와라 집안 중 섭정・관백으로 임명된 다섯 개의 가문으로 코노에(近衛), 쿠조(九条), 니조(二条), 이치조(一条), 타카츠카(鷹司) 가문을 가리킨다 - 일본국어대사전)의 필두인 코노에 가문의 현 당주이다. 코노에 가문은 다이카 개신(大化改新, 645)에 관여한 후지와라노 카마타리(藤原鎌足)의 흐름을 이은 집안으로, 쇼와 시대 태평양 전쟁 전기(前期)에 3차에 걸쳐 총리를 역임한 코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를 배출했다. 코노에 씨는 후미마로 이후 2대째에 해당한다.
단, 그 계보는 약간 뒤얽혀 있다. 후미마로의 장남인 후미타카(文隆)가 결혼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베리아에 억류되어,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래서 후미마로의 사위였던 호소카와 모리사다(細川護貞, 1912~2005)의 차남인 모리테루 씨(護輝)가 양자로 들여져, 가독을 잇게 되었다. 그것이 코노에 씨이다. 타다테루(忠煇)로 개명한 이유는 '코노에'(近衛)와 '모리테루'(護輝)에 '지키다'(衛, 護)라는 의미가 중복되기 때문이었다.
즉, 코노에 씨는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1938~) 전 총리대신의 친동생이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과거 쿠마모토 번주 가문인 호소카와 가문의 후손으로, 1938년 토쿄에서 태어나 아사히신문 기자 생활을 한 뒤 1971년 정계에 입문했다. 1983년에 쿠마모토 현지사에 당선했고, 1993년에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수에 실패하자 연립정권에서 추대한 총리가 됐다. 이후 정계 은퇴를 한 이후 도예가로 전직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쿠마모토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이 나온다.
코노에 씨는 중일전쟁 하의 1939(쇼와 14)년, 토쿄의 호소카와 가문 저택에서 태어난다.(기묘하게도 앙리 뒤낭과 생일이 같다) 그가 태어난 곳은 쿠마모토번의 별저가 있었던 곳으로서 당시에도 쿠마모토 번의 과거 가신 일족이 많이 살았기에, 쿠마모토 사투리가 자주 들려오는 '쿠마모토 마을'(熊本村)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또한 태평양 전쟁 후, 코노에 씨가 가쿠슈인 대학(学習院大学)을 졸업한 후 영국에 유학했을 때에는 쿠마모토일일신문사 사장 코자키 쿠니야(小崎邦弥)로부터 "해외 활동에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라며 신문기자 신분을 받았다. 이는 일본인이 해외에 자유롭게 도항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받은 배려이기도 했다.
이러한 에피소드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코노에 씨가 국제 적십자・적신월사연맹 총재 선거에 입후보했을 때, 호소카와 모리히로 씨의 선거 활동을 응원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선거에서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표를 쌓아올리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한 경험이 국제 무대에서 각 가맹사로부터 끈질기게 지지를 얻어낼 때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일본에서의 선거 활동에는 코노에 씨의 부인이자 타카히토 친왕(三笠宮崇仁)의 장녀인 야스코 씨(近衞甯子)도 선거차에 타거 머리를 숙이며 투표를 호소했다고 한다. 일본적십자사는 황후가 명예 총재를 맡았고, 게다가 아이코(愛子) 내친왕도 올 4월에 적십자사에 갓 입사했다. 일본 적십자사의 인맥의 화려함은 필자같은 일반인에게는 눈부실 뿐이다.
코노에 씨의 저서에는 촌스러운 일화도 적지 않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 때 의원금(義援金) 배포에 관한 이야기가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당시 일본 적십자사에 모인 방대한 의원금이 이재민에게 신속하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사무 압박이었다. 일본 적십자사는 의원금 전액을 이재민에게 건네기 위해 임시 직원을 고용하는 비용을 모두 자체 부담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의원금 유용에 몹시 민감한데, 배분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서는 좀더 유연한 자금 운용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최근 방재성 설치를 주장하는 이시바 시게루 씨가 새로운 총리에 취임했다. 재해 대국에 사는 우리는 적십자 운동 기념일을 맞아 다시 한번 이재민 지원이라는 난제와 마주할 필요가 있다. 확실히 적십자에 기부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그 배경에는 조직이 있고, 일하는 스탭들이 있으며, 번잡한 사무 절차들이 있다. 그러한 현실도 더욱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사진
출처
쿠마모토일일신문(熊本日日新聞) 2024년 10월 20일 일요일자 주말 오피니언란
츠지타 마사노리(辻田真佐憲), <적십자 운동과 쿠마모토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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