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구마모토51 쿠마모토현의 역사 7 - 키쿠치, 아소씨의 기원 중세의 시작 - 무사의 발흥 平安時代後期、日本各地で武士が勃興し勢力を確立してゆく。これは肥後国においても同様に見られ、有力な武士団が形成された。しかし、いずれも肥後一国を支配下に置く「一国棟梁」に至った者は生まれず、これは豊臣秀吉の登場を待た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헤이안 시대 후기, 일본 각지에서는 무사가 발흥해 세력을 확립해 나갔다. 이런 현상은 히고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 유력한 무사단이 형성됐다. 그러나 누구도 히고국 전체를 지배하에 두는 ‘일국동량’(一国棟梁)에 이르지는 못했고, 이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등장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肥後を代表する武士団は菊池・阿蘇の両氏であり、緑川流域の木原氏や諸島部の天草氏、人吉や球磨川流域に拠した関東下向系の相良氏、戦国時代に名を馳せた隈部氏なども知られている。肥後に限らず九州の武士は府官すなわ.. 2023. 8. 3. 쿠마몽 한일관광 친선대사 임명 관련 사진, 영상 모음 (230503) 2023년 5월 3일, 한국관광공사와 일본 쿠마모토 현은 서울 하이커그라운드에서 한국의 캐릭터 '호종이'와 일본의 캐릭터 '쿠마몽'을 한일관광 친선대사로 임명하는 한일 관광협력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한국 관광공사는 향후 쿠마몽이 한국의 주요 관광지를 방문하는 영상을 제작해 일본인들에게 홍보할 예정이며, 일본에서 개최되는 한국관광 홍보행사에도 호종이와 쿠마몽을 초대해 한일 양국 간의 우호관계 증진에도 기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래는 한국관광공사의 보도자료 전문입니다. 업무협약 관련사진 관련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ClMlftifjw 사진출처 * 임명식 사진1 * 임명식 사진2 2023. 7. 27. 쿠마모토현의 역사 6 - 율령제와 흰거북이 이야기 율령제 飛鳥時代から導入された律令の調庸のうち、肥後から納められる特徴的な品目に繭綿と絹織物があった。これは『和名類聚抄』および『続日本紀』中に、貢進される数量の多さとともに記されている。また、紫草も多く貢上され、これらは平城京跡や大宰府から出土した木簡にある記述に裏付けられている。この他にも、朝廷の正月節会料のための「腹赤魚(はらか)」など海産物の献上記録などが残されている。肥後国の納税能力は高く、『弘仁(主税)式』に記録された出挙稲数では、九州総計459万束のうち123万束を肥後国が占めている。そのため公営田制導入において肥後国は、延暦14年(795年)には国等級区分が「上国」から「大国」へと昇格され、その中心を担う一国に据えられた。 아스카 시대부터 도입된 율령의 조세제도인 조용(調庸) 중에, 히고에서 올라온 특징적인 품목으로는 겉풀솜(繭綿)과 견직물이 있었다. 및.. 2023. 7. 26. 쿠마모토현의 역사 5 - ‘히고’ 명칭의 유래 ‘히고’ 명칭의 유래 令制国「肥後国」が史書に初めて記されたのは、『日本書紀』持統十年四月戊戌紀にある白村江の戦いで捕虜となり33年ぶりに帰国した兵士「肥後国皮石郡(合志郡)人の壬生諸石(みぶのもろいし)」について記述した箇所に見られる。朝廷は、帰国した彼と家族の労苦に対し水田や物品を与え、また税の免除などを以って報いたとある。 율령국인 ‘히고국’이 사서에 처음 기록된 것은, 지토(持統) 10년 4월 무술(戊戌)기다. 여기에는 백촌강 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33년만에 귀국한 병사 ‘히고국 카하시군(皮石郡, 현 코시군(合志郡)) 사람 미부노모로이시(壬生諸石)’에 대해 기술된 부분이 있다. 조정은 귀국한 그와 가족의 노고에 대해 논과 물품을 주고, 또한 세금 면제 등으로 보답했다고 한다. 日本書紀の次に編纂された「続日本紀」文武二年五月二十五日条.. 2023. 7. 24. 츠준 교, 일본 국보로 지정 예고 (쿠마니치신문 230624) 국가 문화심의회(사토 마코토(佐藤信) 회장)는 23일, 야마토 정(山都町)의 석조 용수로 다리인 '츠준 교'(通潤橋[1], 통윤교, 츠준쿄)를 국보로 지정하겠다고 나카오카 케이코(永岡桂子) 문부과학상에게 회신했다. 가을 무렵 관보 고시를 통해 정식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쿠마모토 현내의 국보(건축물) 지정은, 2008년 아오이아소 신사(青井阿蘇神社, 히토요시 시)에 이은 2번째다. 문화청에 따르면 다리를 국보로 지정한 것은 전국 최초다. 츠준 교는 에도시대 말기인 1854년(카에이(嘉永) 7년) 물 자원이 궁핍했던 시라이토 대지(白糸台地)에 농업 용수를 보내기 위해 건설됐다. 다리의 길이는 약 78미터, 폭이 약 6.6미터, 높이 약 21미터로 근세 석조 아치형 다리로서는 일본 국내 최대급으로 알려져 있다.. 2023. 7. 18. 쿠마모토현의 역사 4 - 히노쿠니의 성립 火の国の成り立ち 히노쿠니(히국)의 성립 初期のヤマト王権は、地方行政区画として県(あがた)を設置した。『日本書紀』・『筑後国風土記』には、のちの熊本県域に3つの県の記載がある。球磨県はその名称が現在も引き継がれ、閼宗県(あそ-)は阿蘇地方に対応する。八代県は現在の宇土地方を含むより広い領域を含んでいたと考えられる。緑川と氷川に挟まれた宇土半島基部では塚原古墳群に代表される120前後の前方後円墳が発掘されているが、この中のひとつ向野田古墳(宇土市松山町)には30代と推定される未婚女性が埋葬されていた。 초기의 야마토 왕권은 지방 행정구역으로 현(아가타)을 설치했다. 《일본서기》, 《치쿠고국 풍토기》에는 훗날 쿠마모토현의 영역에 3개의 현(아가타)가 기재돼 있다. 쿠마현(球磨県)은 그 명칭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아소현(閼宗県)은 지금의 아소 지방에 대.. 2023. 7. 16. 쿠마모토현의 역사3 - 유구로 보는 고대 쿠마모토 古代 고대 遺構から見える古代の熊本 유구로 보는 고대 쿠마모토 日本の旧石器時代遺跡のうち、約1/3に当たる100ヶ所以上が熊本県で発見されている。しかし、発掘調査は数ヶ所でしか行われていない。多くは阿蘇外輪山一帯や球磨地方に位置するが、水俣市の石飛分校遺跡や天草下島の内ノ原遺跡なども発掘され、その分布は県下全域に及ぶ。最も古いものは熊本市平山町の石の本遺跡から出土した石器類であり、炭素C14測定から30000年以上前のものと推測されている。出土数は4000点にのぼり、安山岩の破片から作られた小刀類や局部磨製石斧も見つかっている。これらや、九州が比較的自然環境に恵まれた土地であったことから、古代熊本は豊かな狩猟採集社会生活の舞台だったと推測される。 일본의 구석기시대 유적 중 약 1/3에 해당하는 100곳 이상이 쿠마모토현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발굴조사는 몇 군데에서만.. 2023. 7. 14. 쿠마모토현의 역사 2 - 개설 本項では、熊本県の歴史を概説する。 본 항에서는 쿠마모토현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九州の中央部に位置する熊本県は、古代の「肥の国(火の国、ひのくに)」が前後二分された際の東側、旧国名のいわゆる肥後国が占めた領域とほぼ一致する。これは、近世江戸時代の幕藩体制期において球磨郡の一部などが別藩の領土とされるなど、また逆に肥後国天草郡に属していた長島が現在では鹿児島県に編入されているなどの一部例外はあるが、府県制施行によって置かれた九州各県のうち宮崎県(日向国)とともに伝統的な国制をほぼ維持した例にあたる。 큐슈의 중앙부에 위치한 쿠마모토현은 고대의 ‘히노쿠니’(肥の国, 火の国)가 히젠(肥前)과 히고(肥後)로 양분되었을 때의 동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옛 명칭으로는 히고국(肥後国)이 차지했던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근세 에도 시대의 막번체제기 때 쿠마군.. 2023. 7. 12. 쿠마모토의 역사 1 - 들어가는 말 누군가 필자에게 일본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쿠마모토현(熊本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쿠마모토현은 동쪽으로 아소산(阿蘇山)이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는 아리아케 해(有明海)가 있다. 산을 가고 싶으면 동쪽으로 가면 되고, 바다를 가고 싶으면 서쪽으로 가면 된다. 아소산은 화산으로 겨울에는 나카다케(中岳) 등 분화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 또한 아소산 전역에는 한우와 비슷한 품종인 적우(赤牛, 아카우시)를 키우는 목장이 펼쳐져 있으며, 쿠마모토시 시내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마음껏 소고기를 즐길 수도 있다. 서쪽으로 가면 아마쿠사(天草) 제도가 있는데 아마쿠사의 북쪽 해안에서 조금만 배를 타고 나가면 동물원이 아니라 자연에서 펼쳐지는 돌고래 쇼를 감상할 수 있.. 2023. 7. 8. [근세] 쿠마모토의 곰 이야기와 쿠마몽(번역) 쿠마모토 현의 홍보 마스코트 캐릭터 '쿠마몽'의 인기가 자리잡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금은 국민적인 인기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쿠마몽이 되었다. 나의 근무처인 쿠마모토 대학을 감독하는 문부과학성의 청사 내에서 에이세이 문고(永青文庫) 연구센터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한 판넬 전시와 강연회를 개최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 쿠마몽이 응원하러 달려와 주어, 함께 “쿠마모토성의 복구를 모두 함께 지원해 달라”고 호소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대미문의 불상사로 흔들리고 있는 문부과학성이지만, 그때는 쿠마몽을 보고싶은 마음에 많은 직원들이 강연회장에 모여들었다. 쿠마몽의 그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 넘치는 대응은, 철저하게 프로 의식으로 일관된 것이었다. 쿠마몽의 이러한 일 능력에는 정말로 머리가 절로 .. 2023. 7. 6. 이전 1 2 3 4 5 6 다음 반응형